아픔을 딛고 돌아온 월드컵 거리응원

지난달 2022 카타르 월드컵이 개최됐다. 4년 만의 월드컵에 대한한국 대표팀이 16강까지 진출하면서 거리응원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됐다. 2020년 도쿄올림픽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거리응원이 제한됐기에 사실상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거리응원이다. 지난 10.29 참사가 벌어지며 거리응원이 취소되는 듯했지만 공식 서포터즈인 ‘붉은악마’가 거리응원을 재추진하고 서울시가 조건부 승인해 거리응원이 개최됐다.

 

참사에 불발된 거리응원

 

한국은 예전부터 스포츠 경기를 함께 모여서 응원하는 문화가 존재했다. 거리응원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건 2002년 한일월드컵 때다. 2002년을 계기로 응원 문화가 경기장을 넘어 거리로 확대됐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도 그때부터 관심받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붉은색 옷이 강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한국의 거리응원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이번 월드컵 기간에 FIFA가 ▲카타르 월드컵 라이브 중계 ▲인기 뮤지션 공연 ▲FIFA 레전드의 출연으로 구성된 팬페스트에 전 세계 6개 도시 중 서울을 포함할 정도다.

그러나 이태원에서 10.29 참사가 발생하며 대한축구협회(이하 축협)는 지난달 4일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예정됐던 거리응원의 허가를 취소했다. 10.29 참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거리응원이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도 한강공원에서 술을 팔거나 나눠주는 행사를 허가하지 않는 등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마련했다. 축협과 서울시는 이런 안전조치를 통해 월드컵 기간동안 거리응원을 위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 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비쳤다.

 

거리응원이 다시 열리기까지

 

축협의 안전조치와는 달리 지난달 17일 붉은악마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을 위한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신청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붉은악마 서울지부 측은 고민 끝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진정한 위로와 추모를 건네는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재추진의 배경을 밝혔다.
거리응원 재개에 대해 시민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거리응원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거리응원이 10.29 참사 추모 측면과 안전의 관점에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신규 확진자가 하루 5만 명 가까이 발생하는 코로나19 감염추세도 반대 근거로 제시됐다. 한편 찬성 측은 10.29 참사에 대한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상황에서 응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추모는 거리응원을 하면서도 추모 영상 관람이나 페이스페인팅을 통해 표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안전 역시 붉은악마의 안전대책이 실현된다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붉은악마는 지난달 21일 안전관리계획서를 종로구에 제출했으나 관리 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후 지적당한 행사 면적과 안전관리 인력을 모두 확대해 지난달 22일 다시 제출한 결과 종로구는 구급차 통행로 확보 등을 조건부로 승인했으며 서울시가 최종 조건부 승인했다. ▲야간 안전 확보 ▲원활한 동선 관리 ▲비상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조건부로 제시됐다. 그 결과 지난 6일까지 총 네 차례 광화문광장에서 거리응원이 열렸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의 진땀

 

서울시와 정부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거리응원에 대비해 철저한 안전관리 계획을 발표했다. 안전관리 계획은 크게 행사 운영방침과 교통대책으로 구성됐다. 우선 행사 운영방침은 시민의 밀집도를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존에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될 예정이었던 주 무대를 육조광장으로 옮겨 광화문광장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광장 곳곳에 스크린을 설치해 인파가 분산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했으며 광장 경계에 안전펜스를 설치해 인파의 흐름을 유도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동식 화장실도 설치해 시민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응급차량의 통행을 위한 차선도 마련했다. 더불어 경찰과 소방 770여 명을 포함해 관계기관에서 총 1천 3백여 명을 안전요원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교통대책과 관련해서는 광화문광장과 인접한 세종문화회관 쪽 버스정류소 2곳을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임시 폐쇄했다. 대신 광화문 경유 46개 시내버스 노선의 막차 시간을 경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연장하는 방침을 세웠다. 지하철 역시 경기(포르투갈전 기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2·3·5호선은 정오부터 익일 새벽 1시까지 상하선 각 2회씩 총 12회 증편했다. 광화문광장 안에 입구가 있는 광화문역은 지하철 승강장을 모니터링해 혼잡도가 심해지면 무정차 통과를 한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현장점검에도 나서면서 안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르포: 월드컵 그 붉은 물결 속으로

 

본사는 붉은악마와 정부 안전 정책의 실효성과 응원단의 시민의식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28일 가나전(조별리그 2차전) 광화문 거리응원 취재에 나섰다. 가나전은 오후 10시 시작 예정이기에 8시 30분에 학교에서 출발했다. 혹여 인파가 몰려 입장 불가할 상황을 대비해서다. 혼잡 수준에 따라 5호선 지하철이 광화문역에 정차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101번 버스를 이용해 광화문역 정류장에 하차했다. 광화문 광장과는 꽤 거리가 있었음에도 멀리서 보이는 희미한 무대 광선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붉은악마가 제시한 안전 공지에 따라 우비를 걸치고 광화문 광장에 근접하자 펜스가 보행 동선을 안내했다. 펜스 주위에는 경찰 및 운영요원이 약 5m당 한 명씩 배치돼있었다. 인구 밀집 때문인지 보행로에 10초 이상 서 있으면 움직이라는 주의를 받았다. 불편했지만 안전 면에서 꼭 필요한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으로 들어서니 응원 구역이 나뉘어있었고 커다란 스크린이 총 3개 비치돼있었다. 마지막 스크린 뒤편에는 운영본부와 함께 경찰차 네 대가 서 있었고 조금 더 광화문 쪽으로 이동하니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합동상황실과 소방 CP가 보였다.

가나전을 앞두고 비가 오자 임시대피소가 특별 비치됐다. 대피소를 직접 살펴본 결과는 다소 충격이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임시대피소는 2~3평 남짓의 협소한 공간이었고 간이침대도 성인 남자가 눕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작았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펜스에 비치된 경찰과 요원들이 임시대피소의 존재와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6명 남짓의 관계자들에게 임시대피소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 ‘운영본부에 물어봐라’였다. 임시대피소의 실태와 운영 의식은 임시대피소가 한낱 겉치레라는 인상까지 줬다.

한편 거리응원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식은 준수했다. 스크린에 가까울수록 밀집되긴 했으나 서로 밀치지 않았고 보행로를 다닐 때도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질서 있게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득점의 순간 서로를 끌어안고 방방 뛰는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나다가도 염려스러웠으나 이내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정 이후에 퇴장할 때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모았으며 한 시민은 직접 쓰레기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시민들이 퇴장하고 난 구역은 인파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쓰라린 상처에 새살이 돋듯이

 

이번 붉은악마 거리응원은 10.29 참사 이후 처음 열린 대규모 집회였다. 우려와는 달리 과거보다 철저한 안전 심의와 안전 대책이 있었으며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붉은악마 측이 예상했던 인원의 세 배 이상인 2만 6천여 명이 우루과이전(조별리그 1차전) 응원을 위해 광화문에 몰렸지만 안전사고는 단 한 건도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거리응원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는 첫걸음이자 조금 더 성숙한 사회로의 도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조치가 계속 발전하고 지속돼 앞으로도 안전하게 대중이 화합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신재용·박예나·유성규 기자
202115004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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