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해지는 MB 정부 국정원 사찰 논란, 진실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사찰 의혹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 의혹은 최근 한 국정원 관계자의 폭로를 도화선으로 정치권에서 다시금 조명됐다. 여야는 격한 정치적 공세를 이어 가며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도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결의하며 사찰 의혹의 정치 쟁점화에 나섰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보수 깎아내리기’에 나섰다며 반박하는 태도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에 나선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정무수석을 맡아 여당의 화살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사찰과 관련한 논란이 심화하는 지금 The HOANS에서 논란의 진행 과정과 정치권 반응을 정리해 봤다.

 

국정원 사찰 논란, 첫 발단과 전개

 

지난달 8일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민간인을 상대로 개인 신상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이른바 ‘불법 사찰’ 의혹이 불거졌다. SBS의 최초 보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사찰 관련 비밀 문건의 존재를 제보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폭로에 의하면 사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정 방해 세력을 색출하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됐으며, 조사대상에는 18대 여야 국회의원 전원과 시민단체 활동가를 포함한 최소 900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문건에는 의원들의 구체적인 자금 명세와 같은 내밀한 정보와 국정원이 이른바 좌파로 분류한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막기 위해 특정 방송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 작성에는 국정원뿐 아니라 국세청과 검찰·경찰 같은 국가 권력기관이 협력한 것으로 추정됐다.

폭로가 언론에 공개된 다음 날 국정원은 확인된 바가 없다며 관련 의혹을 부정했다. 그러나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통해 사찰 문건의 존재를 증언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흘러나오며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심화했다. 사찰 의혹이 수면 위로 부상하자 지난달 10일 민주당은 사찰 정보공개와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회 정보위원회 차원의 특별 결의안을 추진했다. 개인 정보 유출 문제 등으로 진상 규명이 부진해지자 불법 사찰 피해자로 거론되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개별적으로 국정원을 향해 정보공개 청구에 나서며 분위기가 급물살을 탔다. 의원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은 본인 관련 자료로 한정되지만, 이는 과거 국정원이 의원들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했는지 유추하는 핵심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법률과 판례에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관련 정보를 성실히 제공하고 있다”며 협조할 가능성을 열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정보위 재적 위원의 3분의 2 이상 의결로 정보공개를 요구하면 비공개 보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국정원장의 발표 이후 지난달 17일 정보위 위원들은 여야 구분 없이 국정원에 사찰자료 제출을 촉구할 것을 합의했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비공개 기록물인 국정원 사찰 문건을 당사자가 아닌 일반에 공개하거나 무단 폐기하면 위법 소지가 있는데, 특별법을 제정하면 적법 절차를 밟을 수 있다”며 사건 관련 특별법 제정 가능성을 밝혔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불법 사찰의 진상을 철저히 밝힐 것을 강조하며 당내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출범시킴과 동시에 개별정보공개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특별법에는 국정원의 사찰 규모를 정확히 확인하고 수집된 개인 정보가 있다면 절차를 거쳐 파기한다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관련 의혹을 쟁점화하겠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역대 국정원 사찰 문건 전량이 공개되길 바라는 만큼 국정원이 자료를 취합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해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두 번째 국면, 정치쟁점으로 이어진 사찰 논란

 

과거 국정원의 사찰 논란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자 여야는 국회를 중심으로 진실 공방을 주고받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보수 정권의 불법 사찰 전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대대적인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오래전 일이라 하더라도 결코 덮어놓고 갈 수 없다”고 말하며 해당 사안을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평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곧 구체적인 규명 시도로 이어졌다.

국정원은 여당의 진상조사 행보에 협력하는 모양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달 22일 과거 국정원 사찰 의혹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국회에 비공개로 보고하며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 많았다”는 견해를 직접 덧붙였다. 다음날인 23일 민주당 소속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보고받은 사항의 일부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불법 사찰이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대로 지속하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국정원의 사찰 문건 규모가 약 20만 건에 달하며 추정 피해자는 2만여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에 힘입어 박형준(이명박 정부 정무수석), 황교안(박근혜 정부 권한대행) 등 보수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인사들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공세를 펼쳤다.

여당의 이 같은 행보에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해당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상습적인 전 정부 탓, 그걸 넘어서는 저급한 마타도어를 하고 있다”며 역공에 나섰다. 야권의 반박 과정에서는 지난 민주당계 정부의 사찰 논란이 재론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김대중 정부에서 불법 감청 혐의로 전직 국정원장 두 명이 징역형을 받았던 사실을 거론하며 민주당의 사찰 의혹 쟁점화를 비판했다. 같은 당의 하태경 의원은 24일 국회 정보위에서 민주당의 태도를 ‘선택적 정보공개’로 규정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찰 여부도 함께 규명할 것을 주장했다.

 

사찰 논란, 보궐선거의 뜨거운 감자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사찰 논란은 보궐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영역을 넓히는 상황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는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정무수석은 일반적으로 청와대와 국회, 정당 간 소통이 원활하도록 힘쓰는 다리 역할을 맡는다. 대통령을 대변하거나 정책 관철을 위해 정당·정부와 협상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정보나 메시지를 우선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설명이다. 반면 박형준 후보가 직접 연루됐다는 증거는 아직 부재한 점, 긴밀한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 특성상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보고할 가능성도 있는 점 등으로 박 후보를 미리 논란과 묶는 것은 지나친 정치 공세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민주당은 박형준 후보가 사찰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관련 의혹에 대해 맹공격을 가했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17일 브리핑을 통해 “당시 정무수석이었던 박 후보는 어떤 불법 사찰 관련 보고를 받았고, 무슨 용도로 그 자료를 활용했는지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 역시 이명박 정권 당시 야권 자치단체장이었던 자신이 국정원 사찰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하며 박 후보의 상세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러한 공세에 대해 박 후보는 “밥 안 먹은 사람 보고 자꾸 밥 먹은 것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며 항변했다. 적폐 청산 수사에서도 이미 국정원 사찰 문제가 언급된 바 있지만 자신은 참고인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23일 캠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서는 “국정원 사찰 문제를 부산시장 선거에 이용하겠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 공작적 행태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재차 반박에 나서며 박 후보를 향한 공세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국정원 사찰 논란, 진실은 어디에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 의혹은 보궐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터져 나오며 혼란스러운 정치적 쟁점으로 진화한 상태다. 여당은 사찰의 규모와 심각성을 언급하며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야당은 이전 정부에서도 국정원의 불법 사찰 의혹이 존재했다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여당의 공세가 선거철을 공략한 저급한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역공에 나섰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진실 공방 속 사건의 진실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승원·김준범·최혜지 기자
2020150060@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