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코리아 디스카운트’ 해법 되나

지난달 1일 최상복 경제부총리는 비상 거시 경제 금융 회의에서 ‘박스피’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26일 금융위원회는 관련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의 도약을 위한 기업 벨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서 관계 부처들은 “핵심은 기업의 보유 자산 대비 주가가 낮아 저평가받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높여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정책이 한국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The HOANS에서 분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박스피’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복합적 원인으로 인해 한국 상장기업의 주식에 대한 가치평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상장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국내 증시 침체가 나타날 때마다 제기됐던 문제다. 증시 저평가 진단을 위한 각종 지표에서 한국 증시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금융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기업의 자기자본에 대한 평가 ▲시가총액 증가율 ▲순이익에 대한 상대적 주가 수준 등이 ▲대만 ▲중국 ▲인도 등의 신흥국 평균과 ▲미국 ▲일본 ▲영국 등의 선진국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회귀 분석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과 저조한 수익성 및 성장성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했다.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꾸준히 지적됐던 취약한 기업지배구조는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기업가치평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한국 증시 상장기업 수는 2,558개로 주요국 7위이며 시가총액은 2,558조 원으로 주요국 13위로 양적 측면에서는 성장을 이뤘지만, 질적 성장을 이뤄내지 못해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를 ‘박스피’라고 부른다. 박스피란 상자에 갇힌 것처럼 일정한 폭 안에서만 지속해서 오르내리는 코스피를 의미한다. 박스피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됐다. 금융위기가 끝나고 코스피는 1,600대에서 2,000대까지 성장했다. 2011년 최고 2,228.96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2017년의 변동을 빼면 10년간 하방 1,700포인트·상방 2,200포인트 사이에서 오르내리기만을 반복했다. 2020년의 코로나19발 경기침체 극복을 위한 유동성 공급으로 3,316인 장중 최고점을 돌파했으나 이후 하락해 2,500포인트 전후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장기간 주가가 500포인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주가에 큰 상승이 없다는 부정적 신호다. 박스피의 원인으로는 ▲경제 저성장 국면 ▲암울한 미래 전망과 신성장 동력의 부재 등이 제시된다.

정부의 강력 추진 의지

이러한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이다.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의 가장 분명한 목적과 취지는 자본시장 그중 대표 격인 증시 활성화 수단이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프로그램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주가순자산비율(이하 PBR)·자기자본이익률(이하 ROE) 등 상장사의 주요 투자 지표 비교공시 시행 ▲기업 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 가치 개선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등이다.

여기서 PBR이란 ‘시가총액/순자산’으로 쉽게 말해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의 가치(시가총액)와 기업의 실제 순자산 간의 비율이다. PBR이 1이라면 시장에서 평가하는 가치와 기업의 순자산 가치가 동일한 것이고, 1 미만이라면 순자산보다 시장 평가 가치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ROE는 ‘당기순이익/평균 자기자본’ 기업이 부채를 제외한 자기자본을 투입해 벌어들인 이익에 대한 수익률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기업활동에 투입된 자본의 효율성과 생산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위 금융위원회 발표를 요약하면 ▲PBR과 ROE 등의 투자 지표를 비교 공시하여 PBR 1 미만의 저평가 상장사와 높은 이익률을 기록한 상장사의 발굴과 분석을 돕는다 ▲상장사가 기업 가치 개선 방안을 발표하도록 권고한다 ▲기업 가치 개선 우수기업 ETF를 도입해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금 유입을 촉진한다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확대하도록 압박해 증시를 부양한 일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4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PBR이 1배 미만인 저평가 상장사들에 기업 가치, 즉 주가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요구했다. 이후 상장사들이 주주 친화적 정책을 발표하며 일본 증시는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한 정부는 코스피 상장사에만 적용될 예정이던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을 코스닥 상장사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선 무엇보다 상장사와 기관 투자자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해당 발표에서도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곧바로 반응하는 한국 증시

정책 발표 이후 한국 증시는 저PBR주를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저평가주의 주가 상승을 예상하고 투자금이 몰리는 모습이다. 한국 증시에선 대표 저PBR주로 꼽히는 금융과 자동차주가 급등했다. 지난달 2일 기준 처음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이 언급된 민생 토론회 이후 2주 사이 금융주 중 제주은행의 주가는 75% 상승했고 ▲흥국화재(50%) ▲하나금융(25%) ▲KB금융(23%) 등도 상승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자동차 기업 기아의 주가는 21% 올라 코스피 시가총액 6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승세에도 증권가에서는 저PBR주를 선별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향후 기업 이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배당을 늘리기 쉽지 않다는 점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희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 테마플레이하듯 PBR이 낮은 주식을 매수하기보단 ‘저평가된 가치주’의 본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해정 DS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일부 산업은 전반적으로 성장이 정체됐거나 경기 흐름에 민감해 저평가가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며 저PBR주 선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남우 기업 거버넌스 포럼 회장은 기업 벨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최소 3년 이상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프로그램의 시행 주체가 경영진이 아니라 이사회임을 명확히 하고, 상장사는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한 뒤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며 주주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기업들이 저평가된 이유를 분석해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가치평가와 주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정부 차원에서 만성적인 증시 저평가 현상 해결을 위한 조치를 발표했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겐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일시적이 아닌 꾸준한 증시 우상향을 위해선 지속적인 정책 추진과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기업의 자율성에 기댄 측면도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식회사에 반하는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 체제, 낮은 주주환원율과 같은 주주 친화적 정책의 부재 등을 개선하고, 신사업 발굴을 통한 성장동력 모색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 1월 정책 구상 발표 이후 2,450선에 머물던 코스피는 2,650선까지 반등했다. 이후 구체적인 방안이 발표된 지금, 한국 증시가 지속적인 상승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형진·김수환·김지현 기자

dundisoft@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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