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기나긴 논쟁의 터널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낙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랜 시간 논의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그 비범죄화에 대해 기나긴 논쟁이 존재했다. 낙태죄의 개념과 헌재의 지난 판결, 그리고 이번 헌재의 판단 논리에 대해 The HOANS에서 정리했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낙태’를 자연 유산과 구분해 ‘태아를 자연분만 시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규정한다. 일반적 용례에 해당하는 낙태의 정식 명칭은 ‘임신중절수술’로, 이에 대해 형법에서는 낙태, 모자보건법에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낙태죄는 이와 같은 낙태행위를 형법상 범죄로써 처벌하는 것으로 현행 형법 제269조(이하 자기낙태죄 조항)와 제270조(이하 의사낙태죄 조항) 등에 규정돼 있다. 현행법은 ▲부모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적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 일부 경우에만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며, 이외의 임신중절수술은 모두 처벌한다.

형법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70조(의사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낙태죄에 대한 헌재의 지난 합헌 판결

낙태죄의 찬반 논의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지난 2012년 헌재는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소원에서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위헌소원의 요지는 의사낙태죄 조항과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산부의 자기낙태를 금지하고 처벌해, 출산을 원치 않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이라며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찬반 4대4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와는 상관없이 별개의 생명체로서 생명권을 가지므로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생명권의 보호를 우선시하는 법의 해석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한 기본권의 측면에서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해 보호되는 태아의 생명권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비해 가볍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현행법이 모자보건법 등으로 규정한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하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될 정도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견이다.

헌재의 이런 결정은 당시에도 주요한 논쟁거리가 됐다. 헌재의 최종 판결이 4대4로 내려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헌재 내에서도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데에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당시 위헌결정을 내린 4명의 재판관은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서 헌법을 위배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낙태를 반대해온 천주교 등 종교계는 당시 헌재의 낙태죄 합헌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4명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낸 점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반면 여성단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헌재의 합헌 판결은 낙태죄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사회 내 논쟁을 종식하는 데는 실패했다. 헌재의 판결 이후에도 낙태죄 존치론과 폐지론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헌재의 새로운 판결, 그 논리는?

지난 4월 11일, 헌재는 낙태죄에 대한 새로운 헌법소원에서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란 해당 법률에 위헌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입법자에게 그 위헌성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일정 시점까지는 법적 혼란을 고려해 법률을 유지하기로 하는 결정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해당 법 규정을 개정해야 하며 국회가 개정할 때까지만 해당 규정은 계속 적용된다.

이번 헌법소원은 업무상 승낙낙태 등의 의사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전문의(이하 청구인)가 2017년에 의사낙태죄와 자기낙태죄 조항이 헌법을 위배한다는 취지로 청구했다. 청구인의 주된 주장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 ▲건강권 ▲평등권 등을 침해하며, 의사낙태죄 조항이 의사가 아닌 사람에 의한 임신중절수술을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보다 처벌수위가 높아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요지다. 헌재는 해당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 세부적으로 ▲헌법불합치 의견 4인 ▲단순위헌 의견 3인 ▲합헌 의견 2인의 결정이 있었다.

헌법불합치 결정의 3가지 근거

우선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의 헌법불합치 의견이 가장 다수를 이뤘으며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의 단순위헌 의견도 존재했다. 다수의견의 주된 논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는 논거다. 즉 해당 조항은 기본권 제한이 그에 상응하는 다른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만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법적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서로 대립적인 기본권으로 보기 때문에, 국가가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면 태아의 생명권은 보호되는 반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완전히 박탈된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서로 다른 법 규정을 정할 수 있다고 봤다. 즉 법률로써 임신주기에 따라 각각의 기준을 마련해 임신중절수술의 가능 여부를 다르게 규정함으로써, 입법자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조화를 실현하는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취지다.

두 번째로, 해당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모든 임신중절행위에 대해 전면적·일률적으로 처벌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큰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현재 해당 조항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해 낙태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는 여성에게도 예외 없이 출산을 강제’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현 법률은 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형법적 제재 및 이에 따른 형벌의 강제력으로 임신한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책임을 강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수의견은 오히려 그런 형벌의 강제력은 낙태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는 여성에게 충분한 정보나 소통이 없는 상황에서, 성급하고 위험한 방법으로 낙태를 하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국가가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탓에 임신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여성이 합법적이고 안전한 시설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기회가 박탈됐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낙태 시술 추정 건수보다 수사기관의 기소 건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형벌조항이 사실상 ‘비범죄화’ 됐다고 봤다. 이미 낙태죄는 사문화(死文化)돼 법적 실효성이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에 현실적인 상황 또한 고려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낙태죄가 실제로는 낙태 결정에 있어 매우 제한적으로만 여성에게 영향을 주며, 실제 형사처벌 건수도 적기 때문에 낙태죄가 과연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라고 봤다. 오히려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본래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그저 여성의 자기결정권만을 제한하거나 심지어는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본래 목적에 기여하는 정도는 크지 않은 반면, 낙태에 대한 전면적이고 일률적인 금지로 인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권에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하는 규정이므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규정을 마련하는 새로운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나아가 다수의견은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낙태에 대한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시술을 실시한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 역시 자연히 위헌이 되는 관계에 있다고 봤다.

다만 다수의견에 따르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국가행위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하여 각각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임신단계에 무관하게 모든 낙태에 대해 일률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법안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해당 조항을 계속 적용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이 헌법 불합치의 이유다.

합헌결정의 근거는?

소수의견으로는 이종석, 조용호 재판관의 합헌 의견이 있었다. 태아가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면 그 생명을 ‘적극적으로 소멸시킬 자유’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견해다. 이는 헌재의 지난 판결과도 상당 부분 일맥상통한다. 소수의견은 자기낙태죄 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목적이 매우 중대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생명권 침해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할 때 형벌을 통해 낙태를 강하게 금지할 수단적 적합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헌재는 2020년까지 해당 형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하며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헌재의 판결이 나온 지 4일 만에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형법 개정안은 ▲제27장의 제목을 ‘낙태의 죄’에서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개정 ▲제269조 및 제270조 삭제 ▲부동의 인공임신중절 처벌 강화 등,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 사유 없이 임산부 요청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가능 ▲임신 22주 이내 기존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더해 임부의 자기결정권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의당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낙태죄의 점진적 폐지 수순에 대한 논의를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위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정미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여러 반발이 일었다. 여성단체들은 정의당이 헌재의 결정문보다도 후퇴한 법안을 개정안으로 발의했다며 비판했다. 결정문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22주까지는 사유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해야 한다고 밝힌 것에 비해, 정의당은 14주까지만 사유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등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은 낙태죄 판결 자체가 생명경시를 조장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22주라는 기준에 대한 지적도 나타났다. 15, 16주면 성별 등 태아의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만큼 15주 이후의 낙태는 생명경시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대로 14주, 22주와 같은 임신 주 수가 여성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형법 개정 이외에도 의료, 의약품 등 다양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불러일으켰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의료인의 낙태 시술 거부권 인정 등이 의료계의 주요 논의 사항으로 떠올랐다. 현재 응급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고 보험 비급여 대상인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의사는 의료법에 의거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지만, 미국, 스위스 등 낙태에 대한 양심적 거부를 법률로 허용하는 국가들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논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헌재의 판결이 사회적 논란과 여러 논의의 필요성을 불러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개정안 발의에 앞서 사회적 공론 형성에 먼저 힘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의당이 빠르게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강한 반발을 직면한 것을 보고 ▲여성계 ▲종교계 ▲시민사회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우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끝이 아닌, 시작

낙태죄에 대한 찬반 논쟁은 그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단순한 대립에 그치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 ▲종교 ▲생명윤리 등 매우 폭넓은 주제가 함축된 양상을 보인다. 이번 판결에서 헌재는 “낙태죄에 있어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대립적이지만, 실제 임신한 여성과 태아 사이의 특별한 관계로 인하여 그 대립관계는 단순하지 않다”고 밝혔다. 임신한 여성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임신·출산·육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며 만약 자녀가 출생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태어날 자녀마저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판단하에 낙태를 결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단지 ‘가해자 대 피해자’ 관계만으로는 임신한 여성과 태아 각각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시사점을 드러낸다. 낙태를 범죄로 규정할 것이냐 아니냐를 넘어서 낙태라는 사회문화적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 있는 폭넓은 입법 사고가 요구되고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낙태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을 끝낼 최종단계의 시작일 뿐이다.

 

이풍환·김원섭·김효재 기자
98tigger@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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