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에 덧씌워진 ‘프레임’ 그리고 진실

윤석열 정부는 끊임없이 ‘건폭’을 근절하겠다는 경고를 송출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민의 반노조 정서가 만연하자 윤 정부는 건설노조를 조직폭력배에 비유한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노조가 사회의 암 덩어리일까? 노조에 대한 오해와 윤 정부의 ‘노조 때리기’에 대해 탐구해 봤다.

 

지난달은 노동 현실을 돌아보는 달이었다. 근로자의날에는 “직장인 10명 중 3명 출근”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올라왔다. 법으로 보장된 유급휴일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노동자의 고충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배달료 인상을 요구하는 ‘배민’ 라이더 파업 또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노동자가 처한 비인간적인 현실을 고발한 가장 큰 사건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씨의 분신 사건이었다. 건설노조는 정부의 ‘건폭몰이’로 불리는 건설노조 탄압과 강압수사가 양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양 씨의 동료였던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통해 건설노조에 ‘건폭’ 표현이 덧씌워지면서 전문건설업체들이 건설노조와의 교섭 자체를 피했으며 응하더라도 ‘억울하면 대통령한테 가서 따져’라면서 불법 하청업체와 함께 들어왔다고 전했다.

 

‘강성노조’ ‘건폭’…대체 어디서 나온 말이길래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및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를 의미하는 노조는 어느새 ▲강성노조 ▲귀족노조 ▲밥그릇노조 등의 용어로 흔히 알려져 있다. 2015년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 팟캐스트에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용어가 1999년 민주노총 합법화 후 언론과 정부가 만들어 낸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관해 물으면 ▲빨간 머리띠 ▲조끼 ▲쇠 파이프가 흔히 대답으로 나온다”면서 언론에 의해 노조 활동 중 일부 과정인 투쟁만이 부각된 당시 사회 인식을 설명했다.

같은 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법에 보장된 합법 파업이라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거들면서 반노조 정서를 더욱 확산시켰다. 결국 김 전 대표는 업체 폐업이 노조 때문이라는 허위 발언으로 법원의 강제조정 명령을 받았으며 이를 보도했던 여러 언론은 정정보도를 실었다.

그렇다면 8년이 지나 윤 정부에서는 노조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빅카인즈에서 기사 검색을 해보니 지난해부터 1년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6개 언론에서 매일 1건 이상의 반노조 기사를 발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 정부는 ‘건폭’이라는 표현을 만들기도 했다. 본래는 채용 비리나 월례비 악습 등 일부 노조원의 불법행위를 근거로 꺼내든 신조어지만 실제로는 노조 전체에 조직폭력배라는 낙인을 찍는 데 사용된다. 미디어오늘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해당 발언이 처음 나온 시점부터 이틀간 ‘건폭’ 표현을 쓴 기사 중 신문 기사의 85.7%가, 방송 기사 93.5%가 ‘건폭’ 표현을 아무 비판 없이 실었다. 한편 ‘건폭’ 표현과 이에 대한 건설노조의 입장을 함께 실은 기사는 신문 기사와 방송 기사 양쪽에서 20%도 채 되지 않았다.

노조가 노동자에 도움 안 된다는 오해

 

윤 정부는 노동시장이 임금과 안정성 등 근로조건에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뉜 현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노동 개혁 과제를 내걸었다. 그와 동시에 임금 불평등 문제와 노동자의 처우 문제 등 이중구조에 대해 노조에 책임을 묻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귀족노조’가 사실상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논리다.

노조에 대한 사회 인식도 냉랭하다. 지난달 노회찬재단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표한 ‘불평등 시대 국민 인식 조사’ 결과는 이를 뚜렷이 제시했다. 응답자 79.8%가 노조의 필요성에 찬성하는 한편 86%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일컫는 양대 노총에 비호감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51.4%의 응답자가 ‘현재 노조가 노조 간부 및 일부 근로자 이익을 위해서만 활동한다’고 평가하며 노조가 노동 현실 문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인식과 달랐다. 지난 2월 열렸던 한국산업노동학회에서 안정화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노조는 2018년부터 5년간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영향을 끼쳐왔다. 안 교수는 해당 결과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저임금 노동자를 노조에 가입하게 하는 전략조직화 사업을 벌인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임금수준뿐 아니라 고용시장 분야의 불평등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조합이 취약계층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 분석은 노조가 설립되자 해당 기업 내 비정규직의 비중은 줄어들고 신규 고용 중 여성의 비율이 커지는 등 긍정적 고용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을 밝혔다.

 

‘노조 때리기’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노조가 왜 ‘노조 때리기’에 시달려 왔는지 그 답을 찾아 지난 1년 동안 한국갤럽의 윤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 추이를 살펴봤다. 지난해 11월 화물연대의 파업 이후부터 윤 정부의 ▲노조 강경 대응 ▲업무 개시 명령 ▲‘건폭’ 근절 발언 때마다 지지율은 반등했고 그 반등세를 따라 취임 이후 최고 지지율인 40%대가 실현되기도 했다. 언론 프레임으로 인한 국민의 반노조 정서를 이용해 윤 정부는 지지율을 올리고자 노조를 공격했고, 노조를 공격해 주니 지지율은 올라가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일부 노조원의 불법행위나 양대 노총을 비롯한 기성 노조를 향한 정부의 견제와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조돈문 한국비정규센터 이사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현재 노조 대응이 그저 ‘공통의 적’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고 해석했다. 조 이사장은 윤 대통령의 “정권 초기 상황이 훨씬 절박했고 그 뒤로도 국정 지지율에서 역대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탈한 지지층을 재결집하는 게 급했고 이 때문에 노사관계나 노동시장 정책을 수립하는 것보다 먼저 노조부터 탄압하고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조에 대한 정부의 현재 입장이 노동자를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의미다.

 

노조와 함께 바뀔 밝은 미래

노동 문제는 뉴스에서, 우리 생활에서 빈번히 논의되는 주제다. 그러다보니 노동운동과 노조에 대해서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직 노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여러 전문가의 해석이다. 비호감 노조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노조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노조 자체만의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론은 무비판적 보도를 지양해야 하며 정부는 노조를 적으로 두기보단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 나아가 언론과 정부가 씌운 프레임 안에 그들을 가두는 대신 우리 사회가 먼저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권예진 기자

yejingw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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