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다양성’의 바람을 바라며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얼마나 형편없었느냐.” 지난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콜로라도주 스프링스 유세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은 ‘기생충’ 작품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미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한국은 무역과 관련해 우리를 죽이고 있다. 그런데도 빌어먹을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탔다”며 비난을 이어갔다.

한·미 무역 갈등을 언급하는 등 다소 정치적이고 과격한 표현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기생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외국 영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산업인 할리우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외국 영화는, 그것도 한국과 같은 작은 아시아 국가의 영화는 평가 대상으로 여겨지기조차 쉽지 않다. ‘미국인들은 자막이 있는 영화는 안 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제작비의 차이로 인한 영화 규모에서의 차이에 시시함을 느껴서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그 주된 요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가 미국의 영화를 당연하다는 듯이 수용하는 것에 비춰볼 때 그들은 타 문화권의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중심의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대표적 시상식이다. 92년 아카데미 역사에서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생충’ 이전에 10개의 작품이 후보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감독상 또한 아시아권 감독으로는 대만의 이안 감독이 유일했으며 각본상은 스페인의 알모도바르 감독이 외국어 영화로는 유일한 사례였다. 심지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 위해서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최소 7일간 상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는다. ‘영화인들이 직접 선정하는 영화제’라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사와 수상 조건 때문에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 영화제’, ‘백인들만의 축제’라는 조롱을 들어왔으며 점차 그 권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 4관왕을 달성한 것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외국어 영화로서 최초의 작품상 수상과 같은 다양한 기록도 유의미하지만, 세계 영화계가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눈뜰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다양성’은 이미 문화·예술계에 널리 퍼져있다. 할리우드의 성장사에서 외국인의 참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자 주춧돌이 돼왔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예술가와 기술진, 그리고 이들이 만든 예술 작품을 소비해주는 관객들까지. 이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의 ‘다양성’은 할리우드의 정체성이자 특색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담겨 있는 다양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미국적 사고의 틀에서만 영화를 수용해왔다. ‘기생충’의 수상은 우리가, 그리고 세계 영화계가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돌아보고 영화 속에 숨어있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더불어 세계가 봉 감독과 한국 영화에 집중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영화 낙후 지역’으로 불리는 곳의 수많은 예술가에게도 길을 열어줬다. ‘기생충’의 이번 수상을 계기로 세계 문화·예술계에 ‘다양성’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며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으로 글을 마친다.

“자막의 장벽을,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박찬웅 기자
pcw040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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