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환영사

몇 달 전만 해도 새내기분들과 직접 만나 여러분을 환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루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새내기분들은 분명 저보다 더욱 참담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던 푸른 청춘의 모습이 마스크의 회색빛 그림자에 덮였으니 그 심정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힘들고도 어두운 현재입니다. 하지만 어두울수록 우리들의 밝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영사를 써볼까 합니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신 새내기분들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심정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셨나요? 여러분은 어떤 심정으로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하셨나요? 소위 명문대의 진학이라는 목표든 혹은 그보다 더욱 원대한 것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든 대부분 분들에게 이곳까지 오게 했던 무언가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이것을 환영이라 부르렵니다. 여러분을 이곳까지 오게 한 그것이 무엇인지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여러분 앞에 아른거리는 미래의 형상으로 찾아왔을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아른거리는 형상, 환영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환영은 그 주인을 내일로 인도합니다. 또한 위대한 자들은 이러한 환영에 스스로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환영은 잘만 이용하면 스스로를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환영은 그 주인을 내일로 이끌고 가며 우리는 그 힘을 이용해 내일을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뗍니다. 하지만 가끔은 환영이 그 주인을 잡아먹기도 하더군요. 사람은 가끔 자신의 환영에 너무나도 매몰된 나머지 그 이외의 것은 바라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환영에 매혹되어 그 어떤 판단도 불가능해지고 스스로의 한계를 과도하게 넘어선 사람도 있었습니다. 몸이라는 그릇이 무너져 그 안에 담긴 정신 또한 무너져 내린 것인지 정신이 안에서부터 곪아버린 것인지 그 사람은 스스로 멈추고 주저앉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는 자신의 환영이 무엇인지도 망각해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자신의 환영에 잡아먹히고 스스로를 잃어 그 무엇도 못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환영의 뱃속에서 하염없이 시간만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뱃속에서 그 사람은 점점 환영에 소화되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거의 다 녹아갈 때쯤 그 사람은 눈을 감았습니다. 녹아가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는지 그 사람은 눈을 감고 그 앞에 놓인 어둠을 응시했습니다. 그곳에서 그 사람은 스스로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눈을 감고서야 자신의 안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잠깐 스쳐 지나간 그 자신을 찾고자 자신의 안을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스스로에 집중했고 자신을 찾기 위해 스스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스스로를 완전히 찾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사람은 오늘 환영의 배를 갈라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시 환영에 잡아먹힐지라도.

아직 어리고 미숙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건방져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하나 알고 있는 것은 대학 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임과 동시에 고민의 연속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환영에게 잡아먹혀 버리기 쉬워집니다. 저는 고민의 과정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스스로를 잃지 않고 스스로의 안에 빛나는 그 별을 붙잡고 계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것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그것을 붙잡아 환영 때문에 녹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글을 쓰고자 결심하게 만든 당신 또한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다시 배를 갈라 보렵니다. 그럼 이만 부족한 환영사(幻影辭)를 마치겠습니다.

 

오성원 기자
osw081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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