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2019년 3월 1일,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피눈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울부짖었던 그들을 기리는 마음이 모여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1919년 3.1운동이 전개된 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1년을 당시 17세의 나이었던 어린 유관순을 중심으로 그려냈다. 일대기를 그려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1년 반 정도만 담았으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수많은 유관순도 존재했음을 대중에게 알렸다. 적은 예산, 공간적인 제약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8호실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영화는 유관순이 서대문 형무소에 처음 발을 디딘 후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입소 후 그녀는 세 평 남짓의 좁은 방에서 수십 명과 함께 생활한다. 이들은 계속 서 있으면 다리가 부어버리기 때문에 하염없이 방안을 돈다. 밤이 되면 대여섯 명씩 순서대로 엎드려 잠을 자고 남은 사람들은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영화 속 일본인은 “조선이 망한 이유는 분열과 이기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관순이 있는 8호실을 포함해 서대문 형무소의 독립 운동가들은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 하기에 서로를 의지하며 밤낮으로 걸음을 옮기고 애국가와 아리랑을 목놓아 부르며 매일을 견딘다. 나이, 직업과 만세를 부르게 된 연유도, 독립에 대한 열정도 모두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가 같기에 함께 행동한다.

유관순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굳은 신념과 눈빛으로 일본에 저항한다. 3.1운동 1주년이 되던 1920년 3월 1일, 유관순은 주저 없이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한다. 이후 만세의 외침은 파도가 되어 8호실을 넘어 서대문 형무소 전체에, 그리고 서대문 거리까지 퍼져 나간다. 어린 소녀의 애국심과 용 기가 서대문 전체의 만세로 이어진 것 이다. 흑백으로 처리된 장면들 속에서도 고문 장면은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유관순은 올바른 가치에 온전히 자신의 힘을 쏟아붓겠다는 의지로 이를 감내한다. 자신은 죄인인 적이 없었다는 긍지로 “하나의 목숨을 내가 바라는 거에 쓰는 게 자유”라고 외치 며 타협하지 않는다. 허나 결국 그녀는 모두 출소하고 혼자 남은 방에서 출소 이틀 전, 장기 파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우리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끌어내는 데에 우선 순위를 두지 않는다. 실제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내며 관객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며 볼거리나 눈요깃거리를 영화 화법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아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허나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단조로움과 차분함이 주는 감동과 여운 속에서 전달된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실제 8호실 여성 수감자들의 사진과 예전 창법으로 배우들이 직접 녹음한 ‘석별의 정’ 노래는 관객들이 발을 뗄 수 없게 만들며 이를 고조시킨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죽어가던 유관순은 이 물음에 “그럼 누가 합니까.”라고 답했다. 아리랑을 함께 목놓아 부르며 독립을 열망하는 순간, 그만두라는 일본인 간수의 지적이 계속되자 유관순은 “우리는 그친다고 그치는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개구리는 하염없이 울다가도 위협을 느끼면 울음을 멈춘다. 허나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며 굳은 신념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를 본 후, 백 년 전 유관순처럼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지 못했던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그들의 정신을 계승해 누군가가 나의 신념과 옳은 가치를 비난하며 위협하더라도 목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그때 비로소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돼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김해솔 기자

pinensu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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