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지구를 위한 공익적 테러

지난달 27일 프랑스 환경운동 단체 ‘최후의 혁신’ 일원이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에 올라가 주황색 페인트를 뿌려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품을 훼손하거나 심지어 자기 신체를 접착하는 등의 ‘에코 테러’는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분명 환경과 지구에 대한 공익적인 목적을 지녔지만, 이런 테러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테러’라는 강력한 표현까지 등장하는 환경운동가들의 행보를 바라보는 여러 생각을 정리해 봤다.

 

미술품 테러

 

미술품 테러에 있어 크게 논란이 된 사례는 지난해 5월 〈모나리자〉 훼손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프랑스의 한 기후 운동가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행위였다. 관람객이 가장 붐비는 어느 일요일, 그는 휠체어를 탄 노인으로 분장해 〈모나리자〉에 케이크를 던졌고 바로 보안요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사실 〈모나리자〉를 향한 공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에는 프랑스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한 여성이 〈모나리자〉에 뜨거운 차를 뿌린 일도 있었다.

〈모나리자〉와 같은 명화가 가진 가치는 굉장히 높다.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뿐 아니라 문화적, 예술사적 가치 덕분에 큰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메시지를 널리 전하고자 하는 운동가들이 명화를 표적으로 삼은 공격을 벌이는 것도 뜻밖의 이변은 아니다.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만, 통상적인 방법에는 한계를 느껴 미술작품의 명성에 기대게 된 것이다. 환경운동단체 ‘JUST STOP OIL’는 예술을 활용한 환경운동이 최후의 수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영국에서 진행해 오던 도로 운행 방해 시위는 신문의 맨 뒷 페이지에 실렸으며, 이전까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상당히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공격을 감행하며 대중을 향해 “지구와 환경보다 한낱 그림 하나가 더 중요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이전에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예술품에 대한 공격은 역사적으로 계속 있었기에 사회적 메시지를 전할 목적으로 예술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선을 넘은 환경운동

 

일각에서는 공익 목적으로 명화나 공공장소 등을 훼손하는 행위가 더욱 과격한 행위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지난 2019년 한 동물권 보호 단체에서 경기도 소재의 한 종돈장에서 새끼 돼지 3마리를 구출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단체는 동물 사랑과 보호를 위한 정당한 행위이며 부적절한 환경에서 사육된 가축을 구조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동물 보호라는 목적성이 뚜렷하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소유물 갈취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다.

재산에 대한 공격을 넘어 사람에게까지 폭력 행위를 가하는 환경운동도 종종 보도된다. ‘시 세펴드’라는 한 해양 환경단체는 국제기구에 의해 포획이 금지된 고래잡이배들을 직접 공격해 논란이 됐다. 고래잡이가 해양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금지된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방식이 합법적이며 정당하다는 대중의 평가를 받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최근에는 환경주의가 아예 극단적으로 행해지며 범죄의 사상적 근원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몇몇 총기 난사 사건에서는 총격범들이 그들의 범행 동기로 환경주의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와 배상

 

동물권 옹호나 환경보호라는 박애주의적 동기에도 이러한 형태의 환경운동은 각종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손괴죄나 공공기물 파손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범죄로 규정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9·11테러 사건 이후로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미국은 위험성 차단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 이러한 극단적 위법행위를 실제 테러 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도 환경운동가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발생한 에코 테러리즘 사건은 지금껏 1,200건 이상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재산 피해 규모는 약 2억 달러에 달한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지난해 11월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90여 개 유명 박물관의 관장들이 모여 “환경운동을 빙자한 파괴행위의 일종”이라며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대체 불가능하고 훼손에 취약한 세계유산을 이용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 달라”고 말하며 과격행위 중단을 호소했다.

최근에는 유명 미술품 훼손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늘어나면서 더욱 강력한 규제가 등장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미술품 테러가 일어나면 개인에게 배상 책임을 묻기보다 박물관이나 기관에서 복원 비용과 손해비용을 충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영국 웨스트민스터 법원은 내셔널갤러리에서 명화를 훼손한 기후활동가 두 명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배상을 명령했다. 호주에서는 출근길에 통행로를 점거하고 시위에 나선 기후활동가에게 15개월의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환경운동가의 입장에서

 

환경운동가들의 시위 행태를 보며 그들의 모습이 시민불복종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민불복종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은 ▲목적의 정당성 ▲비폭력성 ▲최후 수단성 ▲처벌감수로 환경시위는 위 네 요인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환경과 지구라는 공익적 목적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라고 보기에도 한계가 있다. 또한 탄원서 제출이나 가두시위와 같은 합법적인 수단으로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미술품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감수하고 있다. 시민불복종의 일종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환경운동가의 입장에서 최선이란, 대중에게 많이 노출돼 환경피해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평화적이고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강한 방식을 택하게 됐다. 대중의 인식 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 투쟁은 정부나 국가 단위의 실질적 대책이나 대규모 시민운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전지구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입장은 조금 다른 상황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움직임에 공감을 이루기에 앞서 행위가 파괴적이라는 점에 반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주로 타겟이 되는 명화들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적 지반의 결정’이며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가치도 굉장히 뛰어나다. 환경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인류의 유산을 볼모로 삼는 행위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지구를 위한 인간, 인간을 위한 예술

 

과거 여성참정권 운동가들도 도심의 건물에 불을 지르거나 짱돌을 던졌다. 그들도 오늘날의 기후활동가와 같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전시작품을 훼손하기도 했다. 당시 투표권이라는 권리의 획득을 위해 노력한 이들도 처벌을 면하지 못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라는 이슈는 전 인류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임은 틀림없다. 환경운동가들은 법적 처벌을 무릅쓰고 테러와 반달리즘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기후를 위해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를 위한 ‘히어로’일까, 사회의 ‘빌런’일까?

 

임재원 기자

kb11151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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