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해석 열풍,’ 영화를 보는 것은 누구인가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전체 극장 매출액은 1조 8140억 원에 달했다. 이는 한국 영화산업 역사상 최고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또 인구 1인당 연평균 극장관람횟수는 4.18회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가 된 현상을 두고 저명한 영화 평론가 정성일 씨는 “달리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이 마땅치 않아 그렇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국민 대다수가 영화를 즐겨 보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주목할만한 트렌드가 생겼다. 바로 페이스북·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영화 해석”을 내놓는 이들의 활약상이다. 많게는 수십만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막 개봉한 신작부터 개봉한 지는 십수 년이 지났으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까지, 다양한 영화를 선정해 요약·해석·평가한다. 영화 평론가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보다 개방적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팔로워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점, 직업 경력이나 학력 등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영화 해석 역량만 인정받는다면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전통적인 평론가와는 구별된다.

이러한 현상에는 분명 관객들이 자신이 관람한 영화에 대한 이해를 고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흔히 영화를 ‘종합 예술’이라 일컫는다. 줄거리뿐 아니라 촬영 기법·조명·미술·음악 등의 내재적 요소와 그것이 제작된 역사적·사회적 맥락 등의 외재적 요소까지 모두 영화를 구성하는 필요불가결한 부분이라는 데서 붙은 명칭이다. 다만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그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영화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자신의 해석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지점은 일부 관객이 타인의 영화 해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4월, 27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페이스북 페이지 ‘영화덕후 쁘띠거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에 대한 해석을 게재했다. 해당 게시물의 댓글 창에는 자신의 친구를 태그하며 “해석 나왔어. 이렇대”라고 말하는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또 지난 3월 국내에서 개봉해 절찬리에 상영됐던 영화 ‘어스’는 그 전개가 다소 난해하고 어려웠는지, 한동안 ‘어스 해석’이라는 키워드가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누군가 내놓은 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해석이 마치 교과서라도 되는 양 ‘복붙’되어 무수히 많은 기사와 블로그 포스트, sns 게시물 등에 떠다니는 현상은 다소 기이해 보였다.

물론 영화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의 해석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해석보다 일관되고 심도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기는 하다. 그러나 영화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해석의 우위에 서는 매체가 아니며, 그래서는 안 된다. 구태여 많은 상징과 은유를 숨겨놓고 각종 지식·개념을 동원한 적극적 해석을 유도하는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인 것도 아니다. 모름지기 다양한 삶의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서로 다른 감상을 공유하며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예술의 역할이자 순기능이 아니던가.

문화생활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향유되고 있는 영화에 대한 감상마저도 획일화되고 있는 현상은 우려를 자아낸다. 물론 어떤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일은 머리 아픈 고민은 뒤로 한 채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가벼운 취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의 영화 감상도 그런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영화에 보다 큰 흥미나 애정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제안해본다. 누군가의 해석을 읽기 이전에 자신만의 느낌, 감정, 고민에 온전히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서희 기자
seohee042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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