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갑질, 불법도 아닌데 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2015년 4월 당시 본인이 운영하던 위디스크 사무실에서 전 직원 강모 씨에게 욕설 및 폭행한 동영상이 유포되며 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양회장은 퇴사한 강모 씨가 회사 게시판에 자신에게 좋지 않은 글을 썼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 앞에서 욕설을 내뱉고 폭행했다. 또한 회사 워크숍에서 직원에게 석궁으로 살아있는 닭을 잡게 하고, 일본도로 닭을 벨 것을 강요하는 등 엽기적 행각이 알려지며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러한 갑질은 양회장의 비상식적 ‘기행’만으로 치부되긴 힘들다. 갑질의 피해를 입은 직장인들을 돕는 민간 공익 단체인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접수된 직장 갑질은 총 1천 891건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신원이 파악된 것만 225건이며 폭행, 욕설, 황당한 업무 지시 등 소위 ‘양진호형 갑질’도 23건을 차지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양진호와 같은 비상식적인 갑질을 처벌하기 어렵다. 처벌 가능한 범죄는 폭행에만 국한될 뿐 생닭을 죽이라는 등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갑질은 위법 행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질로 인한 피해는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으며, 퇴사 원인도 자발적 퇴사로 처리돼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법망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고자 사내 괴롭힘을 규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이완영, 장제원을 비롯한 몇몇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괴롭힘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고 주장하며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직장 내 괴롭힘을 법조문에 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근로기준법에 괴롭힘의 기본 개념을 규정하고, 하위 법령에 구체적인 행위를 규정해 하루빨리 양진호 사건과 같은 갑질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

많은 직장인이 대부분의 일과를 직장에서 보내는 만큼 직장 내 갑질은 직장인들의 삶과 직결된다. 검찰이 직장 내 갑질을 수사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민간단체에서 이를 고발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갑질 제보가 하루에 61건꼴로 들어온다고 밝혔다. 오늘도 직장인들은 갑질 속에 고통받고 있다. 하루빨리 정체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화해 직장인들이 갑질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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