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거품 돼가는 간호법, 투쟁의 원인은 어디에

지난달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이하 간호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독립된 업무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이 의료계 종사자 간 갈등을 심화하고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한다며 재의요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결정에는 간호법 제정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 예고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가 준법 투쟁을 시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간호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간협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하는 무기한 파업 대신 연차 투쟁 등의 방식을 통해 단체행동을 전개하겠다”고 입장을 표했다. 따라서 이번 연차 투쟁은 그간 현장에서 의사의 지시를 받고 불법으로 간호사가 대신해 왔던 ▲대리처방 ▲대리수술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등을 전면 거부하는 방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투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간호사의 업무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기에 혹시라도 의료 시스템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쟁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편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간호사가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법률 제정이 좌절됐기 때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간호사를 납득시킬 만한 합당한 설득과 조정의 단계가 생략됐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의료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이 발생하자 당연하다는 듯 법안을 철회하는 태도는 꾸준히 이어져 온 간호사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처사로 해석될 수 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사안을 섣불리 결단하기가 어렵다지만, 이처럼 한쪽의 요구를 묵살해 논쟁을 종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정부의 역할은 각 이해당사자의 요구를 고려하고 타협을 통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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