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열 논란, IT 세계의 빅 브라더?

지난 2월, 정부의 불법사이트 차단 신기술 도입으로 약 800여 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차단됐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이번 차단 기술이 개인에 대한 감청과 통신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불법사이트 차단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The HOANS에서 살펴봤다.

IT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여러 웹사이트가 한꺼번에 접속불능 처리됐다. 이는 방송 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요청에 따라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 차단방식’을 통해 일부 웹사이트를 차단조치한 결과다. 차단된 웹사이트는 주로 ▲인터넷 도박이나 ▲저작권물· 성인물 불법공유 ▲거래금지품목 거래 등을 위한 각종 불법행위 사이트로 알려졌다. 논란은 이번부터 정부가 새로 도입한 SNI 필드 차단방식이 개인 인터넷감청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정부 불법사이트 차단기술의 원리

인터넷이용자는 어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도메인네임과 IP주소를 서로 변환해 주는 DNS(Domain Name System) 서버에 접속패킷을 보내야 한다. 예를 들어 thehoans.com이라는 웹사이트에 접속하려면 DNS를 통해 thehoans.com이라는 도메인네임을 1.234.567.89식의 IP주소로 변환받아야 한다. 보통 도메인네임과 IP주소는 서로 일대일대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전함에 따라 한 IP주소가 여러 도메인을 서비스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따라서 이용자의 접속패킷에는 추가정보가 필요해졌다. SNI는 이용자가 어느 도메인에 접속하려는지 알리기 위해 DNS에 주는 정보다. SNI의 경우 호스트명이 암호화돼 있지 않아 사용자의 사이트 접속정보 감청이 가능하다. 정부의 이번 웹사이트 차단은 저작권 보호를 위해 2018년 5월 시행한 불법 웹툰공유사이트 차단의 연장선으로, SNI 필드 감청이 주된 내용이다.

이번 조치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며 논란이 일었지만 기존에도 검열은 존재했다. 방통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4호와 제 25조 1항에 따라 방통위는 불법정보 및 유해정보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을 할 수 있다. 정부의 기존 차단방식은 이용자가 DNS에 어떤 사이트에 대한 접 속요청을 보냈을 때, 그것이 방송통신 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지정한 불법사이트라면 불법사이트의 IP주소 대신 warning.or.kr의 IP주소가 반환되면서 접속이 차단되는 일종의 DNS 스푸핑이었다. 비유하자면 누군가 상품을 주문했을 때 주문서에 적힌 상품이 불법상품이라면 해당 상품 대신 주문불가 통지서가 배달되는 식이다. 그러나 많은 사이트가 네트워크 간 통신에 사용되는 프로토콜을 암호화하여 보안을 강화한 https(Hyper-Text Transfer Protocol over Secure Socket Layer)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기존 차단방식은 거의 무용지물이 됐다. 즉 주문자가 상품주문서를 상자로 밀봉해서 중간검열자가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상품을 주문하는 방식이 대중화된 것이다.

https의 대중화로 기존 방식이 불법 사이트를 제대로 차단할 수 없게 되자, 2018년 5월 방통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침해 방지대책의 일환으로 https 차단을 위한 SNI필드 차단기술을 개발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SNI 필드 차단이란 https로 암호화된 접속 패킷이라도 그 안에 포함된 SNI필드는 기술상 암호화할 수 없다는 점을 파고 든 기법이다. 즉 이용자의 접속패킷을 감청해 SNI를 확인하고 그것이 불법사이트라면 차단하는 방식이다. 밀봉된 상품주문서를 중간검열자가 뜯고 확인해서 불법상품이라면 빈 상자를 보내는 방식으로 간단히 비유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새로운 방식을 이용해 기존 차단방식으로는 차단할 수 없었던 여러 해외사이트 및 국내 불법사이트를 검열할 수 있게 됐다.

정부의 인터넷 검열 논란

정부가 유해사이트 차단을 위해 SNI 필드 감청이라는 방법을 들고나오자 인터넷 검열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번졌다. 다만 기존 차단방식 역시 이용자가 요청한 접속패킷을 중간에서 검열함으로써 Warning사이트로 가게 한다는 점에서 보안 문제를 수반하는 인터넷 검열에 해당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16년에 무분별한 인터넷 패킷 감청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얕은 수준의 검열은 불법 유해사이트 차단이라는 공익 실현을 위해 다수의 선진국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정당화됐다. 반면 최근 https 차단을 위해 사용되는 SNI 차단방식의 경우 이용자의 암호화된 접속패킷을 감청하면서 이용자와 인터넷 사용내역을 특정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제기됐다. 필요하다면 통신사를 통해 모든 인터넷 이용을 감 시하고 이용자의 접속내역을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SNI필드 감청 등 인터넷 검열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중국의 ‘황금방패’와 같은 악용 사례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자의적으로 공안부를 통해 SNI필드 검열, DNS 조작 등 IP주소에 대한 검열과 동시에 특정검색어, 주제를 금지하는 키워드 검열까지 진행해 통신의 자유를 크게 억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은 대표적인 인터넷 검열 국가로 꼽히며 세계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개인 사생활 침해가 심한 나라로 언급되는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중동국가나 북한 역시 인터넷 검열을 통해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불법사이트 차단 반대 측에서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이러한 검열이 이루어질 수 있다며 차단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지속했다. 인터넷 검열의 선례를 남겨 추후에 이를 악용하거나 변질시킬 가능성이 존재하고, 차단 기준 또한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논란은 이어져 왔다. 정부는 인터넷 검열의도가 전 혀 없다는 입장이지만 버젓이 드러난 남용 가능성을 방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이런 방식의 검열은 헌법 제18조에서 보장하는 통신비밀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는 조치이며 표현의 자유 등 다른 헌법적 권리나 통신비밀보호법과도 충돌한다. 진보네트 워크센터, 오픈넷 등 시민단체에서도 인터넷 검열에 대한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본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인 권헌영 한국인터넷윤리학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하게 관문을 걸어 잠그는 차단방법은 전제국가에서나 쓸 법한 방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불법사이트를 차단하는 조치가 리벤지포르노와 몰카 범죄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며 정부의 이번 정책에 찬성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정부 입장

https 차단이 발표된 2월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는 제목의 청원 글에는 약 26만 명의 동의가 모여 열흘 만에 정부 공식답변이 달렸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하 이 위 원장)은 먼저 국민과의 소통부족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성인이 합법적으로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국가가 관여해서도 안 되고 관여하지도 않는다”고 언급하면서도 불법도박이나 불법촬영물은 이와 다르며 삭제되고 차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불법에 대한 관용은 없어야 한다”며 기존방식으로 불법 https 사이트 차단이 어려워짐에 따른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방통위 역시 이번 조치가 감청이라는 주장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고삼석 방통위 위원은 방심위의 심의절차가 투명하게 진행되고 실제 차단은 민간 통신사가 하기 때문에 정부에 의한 사생활 침해는 발생할 수 없다고 밝혔다. 14 일 설명자료에서도 감청은 불법이지만 SNI필드 평문을 보고 차단하는 건 가능하므로 이번 조치와 감청의혹은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https 차단이 헌법에 왜 저촉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나 불법사이트를 지정하는 상세한 기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불법사이트의 해악성만을 강조한 답변에 대해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이번 감청이 정부기관이 주도하므로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논란은 아직도

정부 측의 시원찮은 답변과 석연찮은 불법사이트 선정기준에 논란은 더 가중되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2차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https 차단 조치에 반대하는 집회까지 열렸다. 인터넷 검열을 통해 통신의 자유와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2016년 국회 필리버스터 당시의 테러방지법 논란과도 일맥상통하는 논란이라는 의견도 상당수다. 사회가 정보화 시대로 접어든 만큼 인터넷 검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지금, 정부의 다음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풍환·김동현·유효민 기자

98tigger@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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