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後門] 명예롭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다

올해 1월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갔다. 유독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주민들은 한국인에 친숙하고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을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행 도중 가이드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 다낭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어 아직도 한국인 출입이 금지된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이드는 여행 도중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지 주민이 과거를 따지지 않는다고 우리까지 모른 척하거나 나아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며 얘기를 마무리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여행이 끝나고 귀국한 후였다. 지난달 초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법원이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1심 법원은 참전 미군과 한국군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군이 피해자와 가족을 죽거나 다치게 한 점이 사실이라고 판단해 한국 정부에 3천만 원의 배상금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당시 전투 상황이 복잡했기에 한국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군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원고 측 주장에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전쟁은 게릴라전이라는 특성상 민간인에게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 존재했고, 따라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했다 해도 정당방위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더불어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건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를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과연 정당할까. 피해자 측 주장이 사실관계가 어긋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베트남 전쟁이 1960년에 발발했으니 종전을 기준으로 세도 벌써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렇기에 전쟁 당시의 명확한 정황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사건 관련자도 기억이 유실돼 진술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원고 측 주장을 신용할 수 없다면 같은 논리가 피고 측에도 적용돼야 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태도는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이 불가하다는 식이다.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책임을 정부나 공동의 몫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또한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한다고 해서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를 범죄자로 인정한다거나 그들이 참전을 통해 얻게 된 명예를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나라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다했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군인이 전쟁터에서 국가를 위해 용감히 싸운 것과 별개로 판단 실수로 민간인을 살해한 것까지 명예로운 일이 될 수는 없다.

전쟁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사람이 많이 죽기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민간인 학살은 유독 끔찍한 범죄로 취급받는다.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 해도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부당하며 적국일지언정 가능하다면 민간의 피해를 덜 일으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상적인 결과만을 바랄 수는 없다. 의도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거나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이라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일을 무조건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와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과오를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 중 무엇이 진정으로 명예로운 모습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김은서 기자

cat375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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