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4년, 다가올 4년

염재호, 그는 어떤 총장이었나

염 총장은 ‘개척하는 지성, 개혁하는 고대’라는 모토 아래 유례없이 다양한 혁신사업을 펼쳤다. 3無정책 시행으로 ▲시험감독 ▲상대평가 ▲출석부 폐지를 이뤄내 교육제도의 틀을 깼으며, ▲온라인 강의 ▲Q&A수업 ▲토론 ▲발표의 복합적인 구성을 통한 1학년 공통교양 자유정의진리를 만들어냈다. 면학장학금 수혜비율을 대폭 확대한 장학금 제도 개혁 역시 염 총장이 이뤄낸 혁신의 일부다. ‘인재발굴처’라는 표현도 기존의 ‘입학처’를 개편해 미래지향적인 본교의 앞길을 열겠다는 교육 철학의 반영이었다. 여기에 인재 개발, 연구, 대학평가까지, 염 총장의 4년은 치열했다.

그러나 염 총장의 ‘혁신’ 행보는 본교 학생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본교 총학생회(이하 총학) 교육정책국은 지난 28일 게재한 대자보 <고려대학교 염재호 총장님께 드리는 편지>에 ‘총장님께서 학교를 돌봄에 있어 가장 크게 신경 쓰시는 부분은 금전적인 부분이 아닐까 한다. 현재 우리 고려대학교는 과도하게 효율적’이라 적으며 과연 염 총장이 지향하는 본교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본교 50대 총학생회장 김태구(경영 12) 씨는 염 총장의 지난 4년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소통 부분에서는 낮은 점수를 주고 싶다. 2016년도 미래대학 사태는 물론 SK미래관 등 본인의 공약마저도 뒤집은 처세가 그 증거”라며 가감 없는 비판을 가했다.

실속 없는 혁신 사업

SK미래관 건설과 유연학기제 도입은 명실공히 염 총장의 주요 사업이다. 염 총장은 정경대학(이하 정대)과 문과대학(이해 문대)의 고질적인 공간 문제를 해소하고 각 단과대 교수들의 연구 공간을 확충하고자 임기 내 SK인문미래관 완공을 약속했다. 그러나 제 20대 총장 선거를 목전에 두고 아직도 공사 중인 SK미래관은 ▲일관성 부족 ▲불통 행정 ▲부실 이행이라는 염 총장 정책의 단면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지난 5월 14일 문대 교수의회는 “당초의 ‘SK인문미래관’에서 ‘인문’을 삭제함으로써 문과대 공간문제 확충이라는 오랜 염원을 염 총장이 외면했다”고 성토하는 입장 표명 요청서를 염 총장에게 제출했다. 요청서에 따르면 역대 총장들이 공통으로 필요성을 인정했던 인문관 건립이 염 총장 임기에 이해할 만한 설명 없이 변경됐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공청회나 동급의 소통 시도조차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문대 교수의회가 염 총장의 답변에 본래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재반박문을 송부한 것을 마지막으로 SK미래관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았다.

유연학기제 도입은 교수의회가 염 총장의 공약이행 현황을 자체적으로 되돌아본 총장공약평가보고서에서 가장 우수하게 평가한 공약이다. 유연학기제는 늦어도 5월 초 경 수업을 마무리 짓는 강의 시스템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이외의 시간에 교외 인턴십이나 연수에 참여할 여유를 얻을 수 있다. 한 학기 16주 수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개척하는 지성’을 실현한 유연학기제는 2016년 1학기 도입 전후로 염 총장이 꾸준히 언급해온 사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1학기 기준 정대에서 개설된 전공 수업 가운데 유연학기제에 해당하는 과목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양 수업 역시 304개에 달하는 선택교양 중 강의계획서에 유연학기제를 실시한다고 표시한 강의는 ‘생애설계와 자기이해’ 뿐이었다. 자주 회자된 대표 공약이지만 본교생이 효과를 크게 체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총장선출제도, 비민주적?

염 총장의 재선 도전이 확실시 된 가운데 본교에서는 현행 총장선출제도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행 총장 선출은 간선과정을 포함해 3단계로 이뤄진다. 우선 입후보자 검증과 선거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 교수의회가 주관하는 예비심사를 거친다. 그 후에 ▲단과대별 교수대표진 15인 ▲교우회 대표진 5인 ▲법인 대표진 4인 ▲직원 대표진 3인 ▲학생 대표진 3인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의(이하 총추위)의 투표가 이어진다. 대표자들은 3표씩을 행사하며, 이로써 최종 3인이 추려지면 마지막으로 이사회가 총장을 선임한다. 학생 대표가 총장 선출 과정에 참여하긴 하지만 사실상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힘든 구조다.

학내 구성원 중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점, 총장이 내세운 대부분의 정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상이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30인 중 3인이라는 비율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불통 행정이 덧대어지면 학생들이 겪어야 할 피해는 더욱 막대해진다. 뿐만 아니라 총추위의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사회라는 점도 민주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한편 총장선출제도를 개정할 수 있는 개정위원회도 교수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 역시 비민주적이다. 현재 본교 정관은 ▲법인 관계자 ▲본교 관계자 ▲교우회 관계자로 개정위원회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 대표의 자리가 마련돼 있던 총추위의 구성과 비교한다면 본교에서 학생의 입지가 더욱 좁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총장 직선제

‘내 손으로 뽑는 고려대학교 총장’을 슬로건으로 총장 직선제 도입을 주장하는 본교 총학 이만총총 TF 팀(이하 이만총총팀)은 현행 총장선출제도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만총총팀은 ▲총추위에서의 학생 대표진 비율확대 ▲최다득표자를 총장으로 선출하는 개선안의 보장 ▲학생들의 참여가 전제된 총장 직선제 도입을 목표로 각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만총총팀은 ‘총장의 민주적 선출을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지난 7월 17일 열린 기자회견은 총장선출제도 개정위원회에서 학생과 직원을 배격한 채 밀실 논의를 한 학교 측을 규탄하는 한편 학내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반영 요구를 학교 측과 언론에 알리는 장이 됐다.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에 응답조차 않는 학교 측에 이만총총팀의 목표를 담은 총장선출제도 개선안을 전송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학교 측에 방문 항의를 한 결과 8월 9일에는 ▲법인 ▲교수의회 ▲교우회와 논의해보겠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생들은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지껏 내부 논의가 우선이라는 답변만을 내놓는 학교 측에 대항해 본교 총학은 지난 4일 전체학생대표자들의 공동행동을 선포했다. 총학생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개정위원회에 학생 대표와 직원 대표를 포함하고 총장 직선제를 도입하라는 요구에 본교가 유의미한 답변을 내놓을 때까지 무기한 노숙 단식에 돌입할 것임을 발표했다. 이어서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구조로 총장이 선출된다면 등록금 인상, 1교시 시간 앞당기기와 같은 무리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책이 바람직하게 논의되기 위해선 법인과 학내 구성원의 힘이 동등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불완전한 대학가 총장 직선제

이미 총장 직선제를 도입한 ▲성신여자대학교(이하 성신여대)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화여대)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는 총장 ‘직선제’ 형태의 다양성과 함께 불완전성을 시사한다. 지난 5월 30일 치러진 성신여대의 제11대 총장 선거는 개교 이래 최초로 시행된 직선제였다. 그러나 ▲교수 ▲직원 ▲학생 ▲동문이 모두 참여한 총장 선거에서 학생 투표 반영비율은 9%에 불과했다. 76%의 반영비율을 가진 교수 투표 결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었다. 국내 사립대 최초로 총장 직선제를 도입한 이화여대 역시 학생 투표 반영비율이 8.5% 불과했다. 두 학교 모두 직선제를 도입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불완전하다.

서울대의 경우 내부인사 20명과 외부인사 10명으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가 예비후보자를 선정하면서 총장선거가 시작된다. 그 후 ▲학부생 ▲대학원생 ▲교직원 ▲서울사대 부속교 직원으로 구성된 정책평가단이 점수를 매기고 예비후보자 3명을 추린다. 최종적으로 이사회의 투표를 거쳐 총장을 선출한다는 점은 본교와 동일하다. 다만 1만 6천여 명의 학부생과 1만 2천 명의 대학원생이 모두 정책평가단으로서 활동할 수 있어 직선제로서의 의미가 더해져 있다. 비록 일반적인 형태의 직선제는 아니지만 이 역시 도입 가능한 총장 직선제 모델이라는 점에서 서울대의 총장선출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총장, 우리의 손으로 뽑을 수 있을까
“학생들은 아직 피교육자이다. 학생들에게 결정 권한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2015년 염재호 총장이 언급한 내용이다. 현행 총장선출제도는 해당 발언의 가치관과 맥을 같이한다. 더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이만총총팀이 생각하는 총장 직선제의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장 직선제의 실현 가능한 모델이 가지각색인 상황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직선제 모델이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채 불완전하게 도입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권한 없는 구성원의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재은·김동후·박지우 기자
je823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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