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도 뜨거운 전기요금 논란

7, 8월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무더위뿐만 아니라 전기사용을 옭아매는 ‘누진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강하다. 더위는 지났지만 끊이지 않는 누진제 논란에 대해 The HOANS가 짚어봤다.

이번 여름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온열질환자가 급증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5월 20일부터 8월 27일까지의 온열질환자 수는 4천 465명으로, 작년 5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의 온열질환자 수인 1천 574명을 크게 초과했다. 농축산업의 피해 또한 심각하다. 8월 13일 기준 전국 가축 544만 마리가 폐사했으며 전국 농작물 피해 면적은 2천 334.8 헥타르에 달했다. 폭염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및 지원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취약계층 보호 대책 ▲폭염 특보 시 초, 중, 고교의 등하교 시간 탄력적 조정 ▲폭염 피해 예방요령 리플릿 5만 4000부 농가 배포 ▲횡단보도 그늘막 설치 법제화 ▲무더위 쉼터 운영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지자체들 또한 급수대처비 지급 등으로 농축산가 폭염 피해 복구를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더불어 지난 7월 22일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관련 법 심의 때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데 찬성 의견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3단계 3배’ 전기요금 누진제

폭염 피해가 속출함에 따라 누진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올라온 “국민들은 누진세가 무서워 불볕더위에 지쳐가고 열사병 얻어가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에어컨이 비싸서 못 사는 게 아니라 누진세가 무서워 못 트는 것이다”라는 국민의 발언을 외면하지 말란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약 5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흔히 ‘누진세’라 일컬어지는 ‘전기요금 누진제도(이하 누진제)’는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요금이 증가하는 요금 제도를 의미한다. 1974년 석유 위기에 대응해 전기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제정된 누진제는 현재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되고 있다. 현행 누진제는 2016년에 개정된 것으로 사용량을 3단계로 구분해 최대 3배까지의 누진요금을 부과하는 형태다. 월 사용량을 기준으로 ▲0~200kWh ▲201~400kWh ▲400kWh 초과의 3단계로 구성돼 0~200kWh 구간의 요금은 kWh당 93.3원이며 201kWh~400kWh 구간은 kWh당 187.9원으로 첫 구간에 비해 약 2배, 401kWh~1000kWh 구간은 kWh당 280.6원으로 약 3배까지 증가한다. 2005년부터 실시됐던 이전 누진제의 경우 총 6단계로 구성돼 최대 11.7배의 누진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었으나 누진제 완화 요구에 따라 현행 제도로 개정됐다.

누진제의 명과 암

현행 누진제 옹호론자들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소득 재분배 효과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을 많이 내도록 하면 전기 사용량이 많은 고소득층이 더 큰 비용을 내고 그렇지 않은 저소득층은 저렴하게 전기를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누진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누진제가 여론의 요구대로 축소되거나 폐지될 경우 오히려 1, 2단계를 사용하는 저소득층의 요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누진제는 소득 수준에 따른 전기 사용량을 반영하지 못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가족 구성원 수가 많을수록 1인 전기 사용량은 물론 전체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여 높은 단계의 누진제가 적용된다. 가족 구성원 수가 많은 저소득층이 부유한 1인 가구보다 더 많은 전기요금을 내야 하는 때도 생긴다. 이에 누진제를 통해 저소득층을 배려할 수 있다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소득과 사용량보다는 가구의 구성원 수에 따라 요금이 결정되는 구조이므로 누진제의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일부 누진제 폐지론자들은 현재 요금제도는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징벌적 요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누진제 적용 대상의 형평성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한전 빅데이터 센터에 따르면 전체 전력 사용량의 약 55%는 산업용, 약 30%는 상업용 전력이 차지하고 있으며 가정용 전력은 13%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진제는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된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용 가격도 가정용 전기의 1단계 요금 정도 수준으로 저렴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이 ‘전기요금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한 인천지법 판결에서는 전기요금제가 ‘특정 집단에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형평을 잃었다’라는 점이 인정되기도 했다. 전기요금 누진제의 목적이 에너지 절약이라면 산업용에도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누진제 옹호론자들은 전기 사용량 조절을 위해 누진제를 폐지해선 안 되며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에 다른 요금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누진제가 폐지될 경우 전기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해 전력 수요 조절이 어려워져 블랙아웃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용 전기는 기업 간 사용량 편차가 크고 사용량 조절이 어려운 데 비해 가정용 전기는 사용 패턴이 비교적 일정하며 계절별 수요 변동이 커 누진제를 통한 수요 조절이 쉽다. 이 때문에 옹호론자들은 가정용 전기에만 누진제를 적용해 변통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싼 전기요금은 만국공통?

가정용 전기 대상 전기요금 누진제는 일본, 대만, 미국 등의 국가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전기 민영화가 이뤄졌다. 여러 회사가 전력 시장에서 경쟁하는 구조다 보니 회사마다 가격도 요금제도 다르다. 소비자는 단일요금, 시간별 차등 요금 등 여러 요금제를 비교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점유율이 높은 도쿄전력의 누진제는 한국과 동일한 3단계로 구성돼 있지만, 누진율이 약 3배인 한국과 달리 약 1.5배에 불과하다. 그러나 1단계 요금이 kWh당 약 195원에 달해 실질적으로는 일본 가정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이 한국 가정보다 훨씬 비싸다. 대만 또한 전력 시장이 개방되며 다양한 업체들이 경쟁하는 구조다. 대만에는 누진제와 시간별 차등 요금제의 두 가지 요금제가 존재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다. 이 중 누진제는 6단계로 구성돼 있으며 누진율은 최대 약 2.8배로 한국보다 낮다.

가정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대다수 국가는 독점 형태인 한국과 달리 전력 시장을 개방해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다양한 회사가 경쟁해 서비스의 질을 올리고 다양한 요금제 및 할인 혜택이 제공돼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지난 2016년 누진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한국에서도 ‘통신요금’처럼 소비자에게 다양한 전기요금 선택지를 제공하겠다는 방안이 검토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2020년까지 계절과 시간대별로 구간을 나눠 전기요금을 적용하는 계시별 요금제의 도입을 제시했지만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정부는 국민의 전기 요금 폭탄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실시간으로 사용량과 예상요금을 알 수 있는 스마트 계량기 설치, 계시별 요금제 도입 등의 개편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누진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차 커지고 있다. 한전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통해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 누진제의 형평성에 대해서는 반박이 끊이질 않고 있다. 더불어 건강을 위협하는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을 켤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누진세 폐지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누진제에 대한 불만은 매년 반복되는 반면 변화는 미미하다. 폭염보다 더 무섭다는 ‘전기세 폭탄’, 그 해결을 위해 현 누진제를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박소현·김동현·고성열·이지영 기자
jskd6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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