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갓생 살기 대결

갓생,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의미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

 

필자는 흔히 말하는 ‘갓생’ 신봉자다.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위해 To-do 리스트를 잔뜩 쌓아놓고 온종일 이들과 낑낑대다가 하루를 알차게 썼다는 티를 내고 싶어 인스타 스토리를 올린다. “그만 열심히 살라”는 친구의 답장에 힘들다고 징징대면서도 속으로는 남들이 열심히 하는 나를 알아줬다는 생각에 뿌듯해한다. 이렇게 필자는 타인의 인정이라는 외부의 원동력에 의존한 채 대학에서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필자는 확실히 행복하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갓생 살기 대결에 몰두한 듯하다. 열심히 사는 지인을 보며 본인의 나태함을 자책하고 나도 옆의 누구처럼 치열한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마치 누가 누가 갓생 사나 대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쌓아둔 할 일과 계속해서 씨름할 뿐이었다. 하고 싶다 여겼던 일은 어느새 해야만 하는 일이 됐고 그사이에 열정은 차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바쁜 하루에 벅차하면서 열정 없는 나를 다그치고 남들보다 부족한 내 모습에 또다시 좌절한다. 의미 없는 바쁨이라 여기면서도 놓지 않는 건 가만히 흘려보낼 시간이 두렵다기보단, 내가 맡은 일도 다 해내지 못했다는 실망 섞인 시선이 무서웠기 때문이리라. 매일 밤 남은 할 일들을 보면 숨이 턱턱 막혀오지만 그럼에도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위해 또 한 번 잠을 포기한다. 그렇게 며칠 밤을 새우고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친구를 만나 “또 밤새웠냐”는 말을 들은 필자는 바보같이 뿌듯해했다.

하지만 필자는 결국 무기력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 모든 열정은 증발했다. 그러면서도 할 일은 계속 쌓여 “다 버리고 휴학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친 상태로 일을 미루고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던 요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를 지켜보던 친구가 책 한 권을 선물해줬다. 당연한 말을 예쁘게 써둔 전형적인 에세이 책 같았다.

온라인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항상 그랬지만 그날따라 수업이 더 듣기 싫었던 것 같다. 녹화나 해 두고 잘까 생각도 했었지만 양심에 찔려 책상을 뒤적이다가 친구가 선물해줬던 책을 발견했다. 선물 받은 지가 언젠데 아직 펼쳐보지도 않은 나에게 실망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고 이런 책은 왜 읽는 걸까 생각하던 찰나에 책 속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면 내가 행복한가?”

 

작가는 매일 타인의 시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라 타인이 바라는 인생이라 했다. 그리고 머리가 혼란스러울 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행복한가?”. 매 순간을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살아왔던 필자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하다던 그 질문을 가장 미뤄온 게 아닐까. 이제야 그 질문을 던져봤을 때 필자는 확실히 행복하지 않았다.

갓생만이 의미 있는 인생처럼 여겨지는 요즘이다. 잠을 쪼개가면서 결과물을 생산하는 과정이 결코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 위 질문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타인의 인정을 위해 의미 없는 바쁨만 좇는 삶은 언젠가 지친다. 끝없는 갓생 살기 대결 속에서 갓생 살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만 계속하게 될 거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하고 싶은 일만 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자.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남의 인생을 살아온 걸지도 모르겠다.

 

정윤희 기자
ddulee388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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