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감. 이 말을 들으면 뭔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중요한 다짐을 할 때 ‘앞만 보고 달리자’는 말이 널리 쓰이기도 한다. 우리는 대부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앞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은 곱게 보지 않는다. 카타르 월드컵을 마치고 벤투가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새로운 감독을 찾을 때, “새로운 감독 선임, 역행은 안 된다”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뒤’라는 방향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반영됐을 것이다.

방향을 앞으로 정해놓고 우리는 줄줄이 나아간다. 이처럼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는 이미 정해진 성공의 루트가 있다. 나도 대학 입시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겹게 들은 말이 있다. 바로 “문과는 판검사가 최고로 좋은 직업이야”, “좋은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 로스쿨에 들어가”, “그리고 판검사 돼야지” 같은 소리다. 여기에 ‘우리 집 장손’이라는 할머니의 말까지 더해지면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돼버리곤 했다.

대학에 와보니 많은 이들이 성공의 길을 따라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문과의 경우 1등의 길은 로스쿨, 2등의 길은 CPA 혹은 행정고시로 정해져 있었다. 나 또한 그 성공의 루트를 어느새 동경하고 있는 듯했다. 법 교양을 들을 때는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고 로스쿨에 합격한 지인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멋지게 보였다.

우리 사회는 남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고 거기에 맞추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재발굴단에 나오는 과학 영재, 수학 영재들이 의대에 가기 위해 입시판에서 치열하게 수능 공부를 하는 모습은 안타까움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획일화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혁신가가 될 새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획일화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가치는 안정감이다. 모두가 하고 이미 검증된 길을 따라가며 ‘난 틀리지 않았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정말 가고 싶은, 재미있는 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는 식사 메뉴를 정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나의 경우에는 제육, 국밥, 돈가스, 국수를 돌려가며 먹는다. 주로 먹는 음식을 돌려가며 먹기에 어느 정도의 맛은 보장된다. 그런데도 가끔 우리는 새로운 메뉴를 시도한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다.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맛있으면 그 메뉴는 다시 주로 먹는 메뉴가 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성공의 루트만 좇는 이들은 매일 같은 음식만 먹느라 새로운 맛을 놓치는 사람들이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이들은 새로운 메뉴를 거리낌 없이 시도해 보는 사람들인 셈이다.

물론 성공의 루트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폄훼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도 그 길 위를 앞서나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편 이런 세상에서도 성공의 루트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방향도 가치 있는 것으로 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가 유튜브 쇼츠에 나와서 한 말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하고 BTS가 빌보드 1위를 한 것을 보고 저는 오히려 씁쓸함을 느낀다”며 “그들이 만든 판에서 1등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넷플릭스를 만들고, 빌보드 차트를 만드는 나라가 됐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남이 정해준 방향을 따라 앞지르기 경쟁에만 몰두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은 앞으로만 나아가야 할까? 아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래서 뒤로 가도, 옆으로 가도, 아래로 가도, 심지어는 가만히 있어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어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는 여러분, 당신들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 않다. 마리오처럼 점프해서 코인을 얻게 될지, 뒷걸음질을 치다 쥐라도 잡을지 누가 아는가. 이는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아직 내 갈 길 모르는 나에게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두기 위해서 이 말은 꼭 남겨야겠다.

 

김수환 기자

kusu1223@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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