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맺힌 과거를 나 몰라라 한 채 정부는 어디로 가려 하나

지난달 15일 이화여대에서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행사였지만 행사 직후 온라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연신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한일 확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도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일까. 지난달 3일, 정부는 법원에 제3자 변제금을 공탁 신청했다.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피해자들과 여론의 반대가 지속되자 이를 급히 매듭지으려 한 것이다. 한편 2018년 피해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5명은 원래 배상자였던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해 추심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에 The HOANS에서 ▲광복절 경축사 및 공탁 신청 논란 ▲피해자의 미쓰비시 추심 청구 소송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 실태를 알아봤다.

 

정부 태도, 이거 맞아?

 

윤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의 키워드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과 ‘반공’이었다. 이는 북한의 연이은 위협에 맞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일본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으로 표현됐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정보 제공처 및 남침 시 후방 기지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통해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지역의 안보에 일조하겠다고 선언했다.

독립운동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됐다.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에 대해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고, 이는 이후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침략하고 주권을 빼앗은 일제에 대항한 독립운동조차 반공정신으로 해석한 것이다.

나아가 정부를 대신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법원에 제기한 배상금 공탁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자 지난달 17일 재단 측이 이의신청한 일이 있었다. 공탁은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아니하거나 받을 수 없는 때에 변제자가 채권자를 위해 변제의 목적물을 공탁하여 채무를 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원고 4명에게 그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을 지급하고자 한 것이다.

법원이 공탁 신청을 기각하자 재단 측은 채권의 본질이 금전채권이므로 배상의 주체가 일본 기업이나 한국 재단이나 피해자가 동일하게 금전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광주지법 강애란 판사는 “판결금을 제3자 변제하는 것이 (법리상)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채권자의 반대 의사 표시가 명백하다면 제3자 변제를 제한하는 것이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또한 “재단이 가해 기업을 대신해 제3자 변제를 진행한다면 가해 기업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다시 시작된 싸움, 그 끝은 언제쯤

 

지난 3월 정부의 제3자 변제안 체결로 피해자들이 2018년에 수년간의 투쟁 끝 얻어낸 강제 징용 배상 승소 판결은 무용지물이 됐다. 피해자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정부의 독단적 결정에 대해 생존 피해자 3명 전부 거부 의사를 밝혔다.

피해자들은 다시금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제3자 변제안 체결 이후 이들은 미쓰비시 기업의 한국 내 법인에 대해 추심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최종 패소한 미쓰비시 기업이 아직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사건은 광주지방법원에 배당돼 지난달 22일 첫 변론을 마쳤다.

한편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 여운택 씨의 유족 4명이 제3자 변제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너무 지친 탓일까. 그렇다면 이제껏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정부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지난 7월 31일 강제징용 배상 소송 원고 중 한 명이었던 김재림 할머니께서 별세했고, 현재까지 생존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전체 21만 8,000여 명 중 1,200여 명에 불과하다. 피해자 측이 이번 소송에서 패하거나 혹은 승소했는데 또다시 정부가 이를 거스를 경우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번 소송에 우리가 지속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가난과 싸운 평생, 정부는 어디 있었나

 

피해자들은 일평생 일본 정부로부터 정당한 배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충분한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 1975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받은 배상금 3억 달러 중 10%만이 오직 피해자들에게 돌아갔는데, 배상금을 받은 피해자의 수도 8,000여 명에게 불과했다. 또한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해 피해자 수를 조사하고 위로금을 전달했지만, 이는 단 3만 6,000여 명에 그쳤다. 이후 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에서 규모가 축소됐고 박근혜 정부 때 폐지됐다. 2008년 이후로 피해자에게 지급된 의료지원금은 대략 월 7만 원, 1년 80만 원으로 피해자 대부분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민주당에서 발의한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피해자에 대한 보호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여당의 반대로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금전적으로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제정하는 것이 지금으로서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바른 매듭짓기가 필요한 때

 

광복절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선 한일협력 후 과거사 청산’을 외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날 기시다 총리는 태평양 전쟁의 전범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더구나 지난 5월 방한 당시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의 이전의 입장을 고수한다고만 밝혔다. 여기에 사죄와 반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혹자는 경제 발전 및 안보 구축을 위한 일본과의 협력 강화가 합리적인 길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거가 남았다.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덮어두고 미래만을 바라보는 일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우선 뒤를 돌아보길 바란다.

출처: 경향신문

조유솔·김지현·임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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