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NSCOPE: 시행령 정치,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자

법을 제정하는 것은 본래 입법부인 국회의 권한입니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에만 의존할 경우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에 담기 어렵고 권한 남용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죠. 이에 대한민국 헌법 제75조에서는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행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협조를 끌어내기 어려운 경우 국정을 운영하는 우회적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이하 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죠. 이에 시행령 정치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The HOANS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시행령 정치란 무엇인가

 

시행령 정치는 역대 정부에서 꾸준히 시행돼 왔습니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 시행령 정치는 야당과의 마찰을 줄이고 신속한 입법을 가능하게 해 대통령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죠. 또한 국민에게 ‘일하는 정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이 아닌 대통령이 공포하는 행정입법이기 때문에 시행령은 정책 실현을 위한 행정부의 적극적 행보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성과를 내는 가시적인 지표로서 기능하기도 합니다.

또한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에 대처하기에 효율적입니다. 사회적 변화 속도에 맞춰 법률이 제‧개정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국가적 재난 혹은 불가피한 경제 문제 등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시행령이 이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행령은 국회의 상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나 본회의 표결 등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정됨에도 법률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제정된 법률의 내용을 위임범위 내에서 단순히 보완하는 형태가 아닌 시행령 자체가 하나의 법률처럼 작용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경우 기존 법률의 내용을 훼손 및 왜곡할 우려가 있어 ‘법 위에 시행령’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위임받은 범위를 넘어선 시행령의 경우에는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는 국회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행령 정치를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았죠. 실제로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취임 후 1년간 공포 및 추진한 대통령령 건수를 조사한 결과 윤 정부가 809건으로 역대 정부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대통령이 시행령을 남용할 경우 국회를 통한 법 제‧개정이라는 절차가 무의미해집니다. 또한 법 해석에 대통령의 재량이 상당 부분 반영되기 때문에 의회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됩니다.

 

논란 속 시행령 정치

 

윤 정부의 대표적인 시행령에는 ▲검찰 복원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집시법 개정 등이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법무부는 검찰의 수사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내용에 반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했죠. 국회에서는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는데, 해당 시행령은 반대로 경찰 수사에 검사가 개입할 여지를 확대하고 있어 법안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이어 지난 7월 31일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죠. 정부는 경찰의 과중한 업무를 방지하고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축소하고 검찰의 수사권을 강화하는 내용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을 조정하려 했던 기존 법안 내용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조치라고 볼 수 있겠죠.

한편 지난 7월 11일 KBS TV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이 의결되기도 했습니다. KBS 수신료가 전기요금에 포함되는 것 자체는 이전부터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문제입니다. KBS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들도 수신료를 납부해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해서 납부하게 되자 업무량 증가로 인한 비용 발생과 한국전력의 경제적 부담 등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시행령이 윤 정부 집권 초기부터 논란이 된 ‘언론 길들이기’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며 언론 위축에 대한 우려도 커졌습니다. 이에 KBS는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신청했고 야당도 수신료 분리 징수가 공영방송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시법 개정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지난 5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 건설노동조합이 서울에서 1박 2일 동안 대규모 집회를 열자 윤 대통령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죠. 이에 지난 7월 26일 대통령실에서 집회‧시위의 소음 규제를 강화하고 벌칙 규정을 보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을 경찰청에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민노총의 시위를 억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도 발생했으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주요 권리 중 하나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야당과의 논의나 숙고 없이 시행령으로 개정하고자 하는 행태에도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정부는 동시에 법률 개정안도 추진 중이지만 야당에서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크게 반대하고 있어 법률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데요. 이 때문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부의 의사를 관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흔들리는 여야 협치

 

[본문]

시행령 정치 자체는 윤 정부 이전에도 역대 대통령에 의해 꾸준히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유독 윤 정부의 시행령 정치가 비판받는 이유는 여야 간 협치에 대한 고려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21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법안은 전체 2만 1,436건 중 1,216건에 불과합니다. 이는 발의된 전체 법안의 5.7%로 19대 26.8%, 20대 12.6%와 비교해도 절반 넘게 감소한 수치죠. 또한 법안 통과율도 24.3%에 불과해 여야 간 갈등이 심해지며 협치가 어려워지는 추세를 보여줍니다. 이에 여당 법안은 여당만 찬성하고 야당 법안은 야당만 찬성하는 ‘정치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여야가 합의한 내용과 법률을 바탕으로 시행령을 발표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호 설득과 조정의 단계가 생략된 일방적인 시행령은 여야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죠. 그리고 여당의 입장이 반영된 법안에 대한 반복적인 시행령 정치는 이런 상황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당한 정치 실현을 위한 길

 

대통령령이 시행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시행령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법체계 내에 존재하며, 행정부는 법률의 구체적 내용을 정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회의 법률 제정 과정을 건너뛰고 대통령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시행령 정치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한 원래 법률과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시행령을 남발하는 경우 국회의 입법 기능이 위협받을 수 있죠. 이제는 여야 간 갈등을 해결하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시행령 정치’가 아닌 ‘협치’가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김은서·인형진 기자

cat375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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